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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음식에 사랑을 쓰다

프랑스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근대 베트남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흥의 최근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음식은 하나다. 음식에 대한 욕구, 배고픔은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와 사랑을 하나로 ‘조리’하는 영화 ‘테이스트 오브 싱스’는 19세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그의 연인 유진(쥘리에트 비노슈)의 사랑 이야기다.     도댕이 주최하는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 풍경을 스케치하는 38분 동안의 오프닝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평가하는 이 초반부의 오랜 조리 시퀀스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도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 해 보인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나도 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면.   그러나 관객은 곧 영화가 후각 자극의 이면에 ‘관계’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화면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이 영화가 음식들의 층 위에서 말하고자 함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도댕과 유진은 20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댕이 유진에게 구혼을 하는 장면이 있고 유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들만의 사랑의 밀어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도댕은 가끔씩 기절하는 유진의 건강이 우려스럽다.     주방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휴식을 취하는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의 방문. 유진은 그와 함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지금의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한다. 도댕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언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이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프랑스적 감성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도댕과 유진은 그 사랑을 요리로 표현한다.     도댕이 오직 유진만을 위해 요리하는 후반부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란 안 흥 감독은 은유와 상징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는 감독이다. 정물의 정직함을 믿는 그는 종종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유진은 가고 없다. 그녀가 없는 주방 공간에 도댕과 유진이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들이 메아리쳐 온다. 진정한 요리의 미학은 음식의 맛에 있지 않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음식 사랑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영화 언어 지난해 칸영화제

2024-02-09

[영화몽상] ‘네 멋대로 해라’

‘네 멋대로 해라’는 1960년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인데,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랑스 누벨 바그의 주역이자 지난 달 스위스에서 조력사로 별세한 감독 장 뤽 고다르(1930~2022)의 장편 데뷔작이다.   누벨 바그도 그렇지만 고다르는 흔히 영화 언어를 혁신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재발명했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특히 ‘네 멋대로 해라’에 쓰인 점프 컷이나 등장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빤히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등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강렬하다.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진 셰버그의 첫 등장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줄거리는 까먹더라도, 요즘 봐도 멋진 차림으로 파리의 거리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며 신문을 파는 모습은 잊기 어렵다.   영화사에서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이지만 지금 눈으로 보면 소박한 면도 있다. 일례로 러닝타임이 한 시간 반에 불과하다. ‘어벤져스:엔드게임’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장장 세 시간 넘는 것에 비하면 단출하다. 줄거리 따라가기도 쉽다. 요즘 블록버스터 시리즈와 달리 복잡한 세계관이나 캐릭터의 이전 이야기를 몰라도 된다.   영화도 이를 굳이 보여주지 않는다. 장 폴 벨몽도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이 밥 먹듯 자동차를 훔치는 것, 훔친 차로 과속을 하다 우발적으로 경찰을 죽이는 것,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인들을 만나는 것 등 눈앞에 펼쳐지는 그대로다. 이 영화는 철저히 현재진행형이다. 여러 장면에서 점프 컷으로 시간의 흐름을 불연속적으로 편집해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그 전후 상황이 헷갈리긴 힘들다.   물론 관객에 따라 이런 방식이 생경하게, 요즘 상업영화의 방식이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다. 마블 시리즈가 엔드게임 전후의 과거를 요약할 때 점프 컷을 쓴다면 불친절하다는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네 멋대로 해라’는 60년대 프랑스 관객에게도 새로운 영화였지만 외면 받진 않았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장 폴 벨몽도는 스타가 됐다.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도 나왔다.   프랑스어든 영어든 이 영화의 본래 제목을 우리말 번역기에 돌리면 모두 ‘숨 가쁜’으로 나온다. 과거 종종 그랬듯 ‘네 멋대로 해라’는 일본에서 의역한 제목을 그대로 옮겨 온 것으로 보인다. ‘숨 가쁜’보다 한결 입에 잘 붙는다. 덕분인지 요즘도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 문구다.   어쩌면 고다르의 영화를 모르더라도, 그의 영화에 담긴 것 같은 새롭고 자유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과 호평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것인지 모른다. 언어도, 영화 언어도 변한다. 쉽고 편안한 방식이 진부하고 지루한 것이 되기도 한다. 상업영화의 언어도 그렇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요즘 상업영화 영화 줄거리 영화 언어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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